이와이 순지 인터뷰 by sassy
작년 피프의 히어로가 기타노 다케시였다면, 올해는 단연코 이와이 순지이다.일본 영화 상영 금지라는
엄청난 문화적 압박 속에서도 젊은 영화팬들은 비밀스런 통로를 통해 이미 그의 영화를 다 보지 않았던
가. 그는 개막식에서 무대에 올라간 감독들 중 유일하게 관객들의 환호성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카메라 기자들이 줄을 지어 따라다녔다.
<4월의 이야기>를 상영한 극장에서 있었던 감독과의 만남에서도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아
낌없이 표현했단다. 그 현장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이와이 순지는 사진보다는 훨
씬 키도 크고 당당해 보였다. 말투가 약간어눌하긴 하지만 새하얀 피부하며 가늘고 긴 손가락이 자기
영화의 분위기 만큼이나 가냘프고 로맨틱한 인상이었다.
1963년 생인 그는 젊은 감독 축에 속하지만 이미 그의 영화세계는 하나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만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그의 태도는 신중하면서도 자신감
에 차 있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한 기자를 민망하게 만드는 여유로움도 보여주면서. 꽤나 고집세고 예
민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간은 선병질적인 모습이었다. 회견 시작 전과 끝난 후에도
계속 사진기자들의 카메라가 터졌고, 사인공세도 이어졌다. 이 땅에서 그의 인기가 어느정도인지 여실
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Q. 피프 상영작인 <4월의 이야기>의 제작사는 이전에 파트너가 되었던 큰 회사와는 다르다. 그 제작사
는 이와이 순지 감독 개인의 사무실 형식을 지니고 있던데.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내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돈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제작사가 내 개인 소유라
하더라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영화제작에 큰 돈이 드는 경우에는 메이저 회사와 함께 작업했지만, 컨트롤 할 수 있는 작은 영화는 내 돈으로 해 왔다. 메이저 회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프로덕션 문제는 나 자신이 해 왔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Q. 한국에서는 일본영화 상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관객들은 이미 당신의 영화를 많이
봐 왔다. 당신의 영화가 상영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열렬한 것에 대해서, 또 당신의 영화가
불법유통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어려운 질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선 일본영화를 볼 수 없지만, 내 영화를 본다는 관객들의 열정
에 감격했다. TV와 영화의 차이는 영화가 돈을 낸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이 찾아서 봐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영화를 보는 그 열정이 참 감동적이었다. 위
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홍콩의 경우 일본 배급회사를 통하지 않고 일본영화가 불법적으로 유통되
는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상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Q. 작년 피프에서는 기타노 다케시가 열렬한 환영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피프를 찾아온 일본 감독들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한국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일본 감독으로서, 일본영화 상영금지라는 한국의 상
황을 영화에 반영할 생각은 없는지?
A. 우선 일본영화가 해금되기를 기대한다. 2002년 월드컵 전에 해금이 된다면, 스포츠와 문화를 잇는
다양한 관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아시아 문화를 내 영화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 자신
이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다음 영화가 어떤 것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가
사귀는 이야기 같은 소재는 내 영화에서 다룰 수도 있겠다.
Q. 당신의 영화는 주로 일상의 작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그런 작은 소재는 어디서 찾으며 또 그것이
일본에서 호소력을 지니는 원인은 무엇인가?
A. (이 때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는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러브레터>나 <4월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소
재이지만, <스왈로우 테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작은 영화와 큰 영화의 차이가 뭔가? 소재를 작은 일
상에서 찾는다는 것, 작은 모티브라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내 영화를 보지도 않은 것 같다는 난감한
얼굴로 기자의 질문을 묵사발을 만드는 이와이 순지. 그러자 기자는 그렇다면 <4월의 이야기>에 국한시
켜서 대답해 달라고 질문) 물론 <4월의 이야기>는 스케일이 작고, 여대생의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그
런 작은 소재는 어떻게 찾았는가라고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는 멍청한 기자) 그건 워드 프로세서 앞
에서 며칠 만에 생각해 낸 것이다.
Q. 일본에서 <4월의 이야기>가 단일 극장에서 개봉되었을 때 관객이 15만 정도 들었다던데, 일본의 관
객들이 그 영화의 어떤 점을 좋아했다고 생각하는지?
A. 10만 명 정도 관객이 들었다. <4월의 이야기>는 작은 영화이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 타겟이 있다.
예전에 <앵글>이라는 작은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 작품 역시 단일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런 경우는
어떤 층을 타겟으로 정할 지 미리 생각한다. <스왈로우 테일>같은 큰 스케일의 영화는 팬 서비스 차원
에서 만든 것이고, <4월의 이야기>는 정해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Q. 한국 관객의 열정에 감동했다고 했는데, 당신 영화의 어떤 점이 관객의 열정을 불러낸다고 생각하는
가?
A. 내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개봉하려고 해도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영화의 개봉이 금지된 상황에
서 한국의 관객들이 일본의 친구들에게 부탁하거나 비디오 테입을 복사해서 내 영화를 가지고 있다는
그 열정이 정말 기쁘다. 그것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Q. 한국영화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솔직히 말해서 한국영화를 별로 보지 못했다. 사실 영화를 잘 안본다. 1년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1
편 정도 보기 때문에 답변하기가 곤란하다. 또 한국영화가 일본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영
화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좋겠다. 영화제에 갔을 때 런던에서 박철수
감독의 <산부인과>를 봤는데, 일본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영화와 차이를 보이는 그런
작품들을 한데 묶어서 일본에 소개되었으면 한다
Q. 피프를 통해서 일본의 감독들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영화에 열
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감독 개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A. 영화를 만들 때는 만드는 나 자신이 있지만, 또한 만들고 나서 그것을 내가 가장 먼저 보기 때문에,
내 영화를 보는 첫 번째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 어떤 평론가 보다도 내가 먼저 관객의 입장에서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 않으면 내 영화를 극장에 내걸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먼저 만든 것이 아니라, TV에서 30분짜리 드라마가 방송되고 난 후 시
청자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일본, 홍콩, 대만, 한국으로 자연
스럽게 연결되면서 내 영화가 소개되는 스테이지가 점차 넓어졌다.
Q. 당신의 영화에서는 청소년 시절의 감수성을 많이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춘기를 중심으로 한 당
신의 청소년 시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영화에 반영되는지.
A. 나는 어릴 때 기억력이 아주 우수했다. 심지어 2살 때 일어났던 일도 기억하는 것이 있다. 지금 나
는 35살인데, 오히려 20살 이후의 생활은 잘 기억을 못한다. 예를 들어 <러브레터>를 만들 당시에 몇
미리 렌즈를 썼으며, 현상 방식은 어떠했고 편집은 어떻게 했는지 등은 속속들이 기억하지만, 그 때 내
가 누구를 만났었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기억을 못한다.
Q. 당신에게 붙여지는 "일본영화의 미래"라는 수식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A. 문화나 예술 쪽의 업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력이다. CF나 TV 쪽에는 그런
창조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영화쪽에는 그렇지가 않다. 영화는 생활이 안된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다. 반면에 나는 TV, CF, 영화 등 다양한 활동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그런 이야기를 듣게되는 것 같다.
Q. 당신은 이번 PPP 행사에서도 기자회견을 한 바가 있다. 합작하게 된 영화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A. 그 작품은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2, 3년 전부터 스탠리 콴이나 에드워드 양 등 친구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자는 얘기는 있었다. 21세기는 어떨까에 대한 국경을 넘나드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것
이다. 내가 할 영화는 지금까지의 내 작품과는 성격이 다를 것이다.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어쩌면 상영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Q. 아시아 각국의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에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아시아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A.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이외의 다른 분들이 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아시
아 영화가 관객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헐리우드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헐리우드 영
화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제재하는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볼쌍사납다. 물론 돈을 많이 들인다고
꼭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다. 좋은 영화란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
보다 재미 없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만들면
서 국가로부터 원조를 받는다면 그 영화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게된다
면 난 영화를 관둘 것이다.
Q. 당신의 영화는 순정만화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개인적으로 만화를 많이 보는지, 그리고 그것
이 어떻게 당신의 영화에 반영되는지.
A. 현재 일본에선 젊은이들이 활자로 된 소설보다 만화를 훨씬 많이 본다. 나 역시 만화책을 많이 봤다.
소설보다는 코믹잡지나 만화, 음악으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나도 마찬가지다.
- WebZine 11호(98.9.26)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