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둘.이건 어떤 선배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거의 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선배는 오하이오 주에 사는 친구집에서 하숙 비슷하게 빈대를 붙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친구부부가 같이 마켓에 가자고 낮잠을 자던 선배를 깨웠다. 투덜투덜... 선배는 일어나 친구의 투도어 차 뒷좌석에 쳐박혀 마켓으로 향했다. "야~ 미국마켓이라 크긴 크다아~" 충청도 촌놈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켓을 두리번거리는 것만 상상해도 우스운데 본격적인 사건은 거기서부터 터졌다. 잘 익은 통닭(Grilled chicken)이 보이자 갑자기 시장끼를 느낀 선배는 그 통닭과 맥주 한 팩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먹을거니까 계산은 엄연히 따로 하겠다는 단호함을 친구부부에게 보여주며 당당히 캐쉬어대 앞에 섰다. "하우 마치?" "$12.73. Paper or plastic?" $12.73까지는 알아 들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캐쉬어의 입에서 나오자 선배는 잽싸게 눈치를 굴렸다. '이 여자가 대체 뭘 물어보는 것일까?' 선배의 눈치는 자타가 공인한다. 금새 선배는 어떤 봉투에 넣어주기를 원하냐는 질문인 것을 간파했다. "비닐" 팔짱을 끼고 늠름하게 서 있는 친구에게 캐쉬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Excuse me?" 선배는 당황했다. 그 뒤에 서 있던 친구도 당황했다. 그러나 친구는 위기에 처한 이 불쌍한 유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의외의, 그러나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이 상황에 와이프와 함께 허리를 구부리며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기가 죽거나 물러설 선배가 아니다. 유창하게 혀를 굴리면서 재도전. "비니~이일" 친구부부는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렀다. 캐쉬어는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도저히 못알아듣겠다는 듯 물었다. "What? What did you just say?" 자신의 발음이 전혀 안통한다는 것에 완전히 기가 죽은, 그러나 이 난관은 오직 자신만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배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비니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