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24한 2주 전,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기홍이가 학교에서 맞고 왔단다. 친구도 아닌 선생님한테... 엄마가 일을 마치고 기홍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엄마, 선생님이 여기를 이렇게 찰싹찰싹 때렸어..." 그러면서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뺨이었단다. 기홍엄마는 이 일을 참아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중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오죽하면 맞았겠니?" 별 일 아니라는 듯 한마디 쏘아 부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 오니 마음이 편치를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기홍이 선생님이 계시길래 슬쩍 물었다. "애가 말을 안듣죠? 워낙 개구장이라 그래요. 그런데 때리실 때, 얼굴은 좀 피해주시고 될 수 있으면 궁둥이같은 데를 좀 때려 주세요." 선생님은 펄펄 뛰었다. 절대로 안 때렸다는 것이다. 애가 꾸며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과연 기홍이가 꾸며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 날 저녁, 기홍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물었다. "기홍아,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응, 아빠." "선생님 말씀 잘 안들으면 선생님도 맴매하는 거지?" "응, 아빠... 기홍이 말 잘 들을께... 그런데, 선생님이 기홍이 여기를 이렇게 꼬집구,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어. 아빠, 인제 선생님 말씀 잘들을거야." " !... 그래......" 아이를 방에서 놀게 하고, 나는 기홍이 유치원에 다니는 Anne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저 기홍이 아빤데요, 앤한테 뭣좀 물어봐 주세요." 자초지종을 들은 앤 엄마는 앤을 불러서 기홍이가 학교에서 맞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앤도 똑같은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응, 엄마... 선생님이 기홍이 얼굴을 이렇게, 이렇게 막 때렸어..." 잠시나마 아이를 의심했던 것을 후회했다. 기홍이를 재우고 나서, 기홍엄마와 의논을 하고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기로 했다. 증거도 없을 뿐더러, 그런다고 이미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로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생각같아선 아예 유치원 문을 닫게 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는 옮겨 주어야 했다. 아이의 뺨을 때린 건 용서할 수 있어도, 멀쩡한 아이를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선생님을 용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네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느 정도의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기홍이가 하는 거짓말의 종류라는 게 고작 이 정도다. "기홍이 이불에 오줌쌌다며?" "아니, 엄마가 쌌어..." "신발끈이 또 풀어졌네... 아빠가 잘 묶으라고 했잖아?"
"아빠, 기홍이 쵸콜렛."
"기홍아, 아빠 열쇠 어디 뒀어?"
"아빠, 타잔 보자."
새로 전학 간 유치원이 기홍이는 썩 마음에 드나 보다. 오늘도 차에서 내리자 마자 "아빠, 안녕!" 하면서 달음박질로 뛰어 들어가는 기홍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측은하고, 또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한 일들이 계속 생길텐데, 나는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아이가 더 커서도 지금처럼 무조건적으로 아이의 편에만 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