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30기홍이는 이제 만으로 네살하고 3개월이 지났다. 고놈의 까아만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대체 요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마 답십리 세탁소 이층에 셋방 살던 다섯살 때쯤일 것이다. 새탁소 오른켠으론 이층으로 올라가는 어두컴컴한 계단이 있고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 계집아이는 항상 나를 그 컴컴한 계단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리곤 했다. 계단에 갇혀서 울다 울다 지쳐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으면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깨워 주시곤 했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기홍이의 기억력은 생각 외로 놀랍다. 피노키오, 인어공주, 라이언 킹등의 만화영화의 대사를 줄줄 왼다. 화면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서도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환히 꿰고 있다는 말이다. 확신하건대, 기홍이는 지금의 기억을 적어도 유년기, 소년기까지는 가지고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얼마 전, 아주 흥미 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약 세 살까지는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세 살 미만의 아이들을 따뜻한 색이 칠해진 방에 넣고 충분히 놀거나 쉬게 한 다음, 아주 편안한 기분을 유지하도록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낮선 느낌을 버리고 안정감을 찾을 정도가 되면, 아이들이 하는 말(babbling, whispering)을 흉내내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너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어땠어? 좋았어?" 그러면 아이들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응, 컴컴하고 답답했어..."
등의 간단한 대답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상황의 기억까지도 해 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너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어땠는지 말해줄수 있니?" 그러면 "좁은 통로", "답답하고 아팠다", "눈이 아팠다", "숨이 막혔다" 라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세 살 이전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의 포근함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기홍이 엄마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한다. 태교(胎敎)의 중요성. 말해 무엇하랴. 태동(胎動)이 있을 때부터 아이들은 한순간 한순간을 기억세포 속에 입력시켜 가면서 자라게 되는 것을... 아이들을 볼 때, 그저 '집에 돌아다니는 조그만 인간들' 정도로밖에 안보일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 죽이고, 총질하는 비디오를 보면서도, '하룻밤 자고 나면 잊어버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아이가 크면서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호기심에 반짝이는 기홍이의 눈동자를 보면서, 하루종일 펄펄 정신없이 뛰어 놀다 잠든 기홍이를 보면서 아마도 지금의 행복한 기억은 기홍이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한다. 말조심, 행동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 아빠가 가끔 말다툼이라도 할라 치면 금방 기가 죽어 버리는 아이다. 엄마 아빠들, 아이들 위해서 하루에 십분만이라도 기도해 주자. 꼭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기도가 아니라도 좋다. 아이들이 잠자기 전에 아이들을 얼싸 안고, 혹은 잠들려 하는 아이 머리에 손을 얹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자. 잠든 아이의 발을 어루만지며 건강하게 커달라고 기도해 주자. 그렇게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찌 삐뚤어지겠으며 어찌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행복한 사랑의 기억은 아이들이 커서도, 아니 늙어 죽을때까지 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