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31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기홍이 옷을 사러 갔었다. 아기 옷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어? 그동안 내가 기홍이에게 너무 무심했었나... 녀석이 내 생각보다 많이 키가 자라 있었다. 옷을 바꾸러 갔다. 그거보다 더 큰 치수가 다 팔리고 없다고 꼭 맞는 것 같은데 그냥 입히란다. 다른 옷으로 골라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어찌된 것이 내 옷을 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허리사이즈만 맞으면 그냥 집어들고 오면서, 기홍이 옷을 고르는 데는 이상하게 신경이 더 쓰였다. 처음 고른 옷을 빼고는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돈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안된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는 다 바꿔 주는데, 여긴 왜 안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집 팔리시(policy)에는 반환이 안된다고 되어 있단다... 게다가 처음에 물건 살 때와는 달리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불손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이놈 봐라? 동양인이라고 깔보는 모양인데, 기분도 떨떠름한 판인데 너 오늘 자알 걸렸다...' 매니저 불러와라... 자기가 매니저란다... 그럼 사장 불러 와라... 자기가 사장 겸 매니저란다... 모든 카스토머는 30일 내에 자기가 산 물건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right이 있는 걸 모르느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완전히 마음대로 해 보라는 투다... 오케이, 거기서 그치고 걸어나왔다. 물론 물건은 두고 나왔다. BBB (Better Business Bureau, 소비자 보호센터)에 편지를 썼다. 프랜차이즈 이름하고, 있었던 일하고, 영수증하고 다 적어서 보냈다. 그 가게 사장 앞으로도 CC를 해서 보냈다. 한 3주 지나니까 집에 편지가 도착했다. BBB에서 온 편진데 곧 연락이 갈 거라고 한다... 오래지 않아 전화가 왔다... 큰 사이즈 들어왔으니까 가져가란다... 아니, 난 돈으로 돌려받고 싶어,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 가게 물건은 사지도 않을거구, 내 아는사람들한테두 다 너희 가게 못 가게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말릴거야... 전화통 너머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가게에 갔다... 현금으로 주겠단다... 그래서, 난 크레딧 카드로 지불했으니까, 그동안의 이자를 포함해서, 이 가게 상호가 찍힌 수표로 달라고 했다... 안된단다... 그래? 그럼 또 편지 쓰지 뭐... 너 그러다가 이자만 늘어날껄? 문을 나서는데 "Sir!" 하고 부른다. 수표를 받아 가지고 나오면서 장사 잘 해... 한마디 해주고 나오려다가, 그 사람이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그만 뒀다. 아직도 제 잘못한 줄 모르는 꼴을 보니 가련하다. ---------------- 내가 미국 올 때 친구 한 녀석이 선물로 준 Victorinox(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tweezers(족집게)가 없어졌다. 10여년 동안 내 열쇠뭉치와 함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 참 아쉬웠다.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기홍이란 녀석이 어쩐 게 틀림 없다. 녀석을 다그쳐 봐야, 벌써 어디다 감춰 놓았는지 잊어 버렸을 게 뻔해서 한 두어번 취조하다가 포기했다. 녀석은 항상 절묘한 곳에 감춰놓기 때문에 어지간한 상상력 가지고는 물건을 숨겨 놓은 곳을 추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일전에 내 반지는 무선자동차 리모콘 건전지 넣는 곳에서 찾았다, 두 달만에... 그 족집게, 운전하다가 코털 뽑을 때 아주 요긴하게 썼었는데, 없으니 영 허전하다. 이빨 빠진 본차이나가 따로 없다. 아이디어 회의 시간에 스위스 아미 나이프 이야기가 나왔다. 게나 고둥이나 이미 다 써먹은 아이디어라 통과는 되지 않았지만 기가막힌 사실 하나를 들었다. Lifetime warranty(평생 품질보증)를 해 주는 빅토리녹스. 망가지거나 파트가 분실되면, 헌 물건을 메일로 보내면 고쳐 주던지, 새 물건으로 바꿔 준단다. 정말일까?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칼을 잘 포장해서 보냈다. 물론 박스에 넣기 전에 뽀뽀도 두 번 해서 넣었다. 10여년을 정든 놈이라 떠나 보내기가 약간 섭섭했다. 3주 후(3주는 어디던지 기본인가보다), 소포가 배달되었다. 소포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신형 빅토리녹스가 들어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흠집 날까봐서 기홍이 손 안닿는 곳에 올려 놓고 한 번씩 만져 보았다. 이 정도 고객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있는 회사... 멋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빅토리녹스가 아직까지도 품질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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