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32내 어린 시절... 바짝 마르고 가무잡잡했던 촌놈... 운동화보다는 맨발이 더 편했고, 불량식품보다는 산에서 캐먹던 칡뿌리가 더 기억에 남는 시절... 이야기 한 번 풀어 보자...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면 개구리들이 부쩍 많아진다. 이 때쯤이면 개구리들은 동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제법 큰 놈들도 눈에 띈다. 동네 꼬맹이 녀석들은 저마다 제 키보다 더 큰 푸레나무 회초리를 들고 분유 깡통 하나를 허리에 차고 개구리 사냥을 나선다. 멸치 대가리나 미꾸라지 말린 것을 곱게 간 가루 등을 가지고 논둑길을 걸으며 그 가루들을 한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오빠 한젤처럼 슬슬 뿌리고 다니는 것이다. 논둑길 저만치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주먹만한 개구리들이 냄새를 맡고 논둑길 부근에 터억하니 앉아 있다. 푸레나무 회초리는 그 놈들을 잡는데 쓰였다. 탄력 좋은 회초리가 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면 개구리란 넘들은 사지를 쫘악 뻗고 기절 내지는 사망하게 마련이었다. 왕복 5리도 안되는 논둑길을 한바퀴 돌고 나면 꼬맹이들의 분유 깡통엔 잡은 개구리로 가득 찼다. 이 개구리를 다리만 떼어 내어 껍질을 벗기고 솔솔 소금을 뿌려 가며 연탄불에 구워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초 겨울 개구리들이 자취를 감추고 나면 꼬맹이들의 빨간 양볼은 통통하게 살들이 올라 있었다. 우린 그 볼살을 꼬집으며 "개구리살"이라고 불렀다.
겨울철에 구워 먹는 참새구이는 또한 일품이었다. 나이가 들어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먹어본 적은 있지만 어릴 때 먹던 참새구이에 비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새구이는 감별장에서 나온 숫병아리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눈이 온 날이면 우리들은 참새사냥에 나섰다. 동네 꼬맹이들은 집에서 저마다 묵은 곡식이나 낱알 등을 한 주머니씩 가지고 나온다. 그것을 멍석 위에 골고루 뿌려 놓고 그 위에는 공사장 같은 곳에서 주워 온 큰 베니아 합판을 튼튼한 작대기 두 세개에 받쳐 세워 놓는다. 그리고 나무판 위에는 무거운 돌들을 올려 놓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쪼만한 꼬맹이들은 간혹 소쿠리로 참새들을 잡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게 해 봐야 하루 종일 한 두마리도 잡기 어렵다는 걸 우린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참새 덫을 장치하고 한시간쯤을 신나게 논다. 그리고 참새 덫을 보면 우리동네 참새란 참새는 그곳에 다 모여 있다. 더러 참새가 아닌 놈들도 섞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온 날이면 새들이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골목대장격인 놈이 줄을 당기는 거사(巨事)를 맏는다. 하나, 둘, 셋하는 신호와 함께 줄을 당기면 그곳에 모여 있던 참새의 약 3분의 2는 도망가 버린다. 그러나 달려가 나무판자를 지근지근 몇 번 밟아 준 뒤 들춰 보면 한 열 놈이 먹고도 남을 만큼인 6~70여 마리의 압사(壓死)한 참새의 시신을 수확할 수가 있었다. 소금찍어 먹는 참새구이... 정말 맛이 있었다. 머리통째 깨물어 먹는 놈들도 있었고...
머리가 좀 더 큰 놈들은 꿩사냥을 나간다. 꿩 사냥은 의외로 간단했다. 손에 들 실한 몽둥이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산에 서너명이 무리를 지어 올라가 한 두시간쯤 헤메고 다니면 풀섶 한가운데서 "퍼드덕"하는 소리를 내며 솟구치는 잘 빠진 장끼 한마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두 세명은 장끼를 쫓는 마라톤을 시작한다. 이 장끼란 놈은 날개 힘이 부족해서 그리 멀리 날지도 못하고 날면서 방향 회전을 하지도 못한다. 꼬맹이들이 할 일이란 고작 장끼가 날아간 방향으로 그놈이 지칠 때까지 부지런히 쫓아가 주는 일이다. 한 30분정도만 뜀박질을 하면 풀섶에 머리를 쳐박은 장끼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손에 든 몽둥이로 "퍽" 내려치면 상황은 끝인 것이다. 장끼를 쫓지 않는 한두명은 장끼가 날아간 반대방향을 뒤진다. 운이 좋은 날은 까투리(암퀑)와 메추리만한 꿩 새끼들까지 모조리 잡을 수가 있다. 수퀑은 항상 처자식(?)이 있는 둥지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꿩을 잡은 다음 날은 집에서 만두를 해먹는 날이었다. 꿩 고기가 들어간 만두는 정말 맛있었다.
토끼는 웬만한 조직력이 아니면 잡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눈밭에서 위부터 아래로 몰면 앞다리가 짧은 토끼가 잘 뛰지를 못하므로 쉽게 잡을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토끼몰이를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이다. 토끼는 눈밭이건 어디건 엄청나게 빠른 짐승이다. 사람 발로는 웬간해선 잡기 어렵다. 그러나 동네 악동들에게는 토끼조차 쉬운 상대였다. 가느다란 철사줄 몇 가닥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얽어 올가미를 만들어 산에 올라간다. 그리고 유심히 토끼가 다니는 길을 살핀다. 그러면 반드시 한 방향으로 나 있는 토끼의 발자국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우리들은 이 길목에 올가미를 설치해 놓고 내려오기만 하면 되었다. 2, 3일 후면 덫을 놓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거기 토끼가 올가미에 목이 졸린 채 죽어 있는 것이다. 이 토끼란 놈은 발만 빠르지 미련하기가 짝이 없어서 제가 다니는 길에 올가미를 발견하고도 후진(back up)을 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앞으로만 앞으로만 돌진하는 것이다. 당연히 올가미에 목이 졸릴 수밖에... 토끼고기는 닭고기와 맛이 비슷했다. 하지만 운이 없는 경우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올가미에 걸린 채 오소리같은 짐승에게 다 뜯어먹히고 가죽만 남아 있는 토끼를 땅에 묻어 주고 오는 일도 가끔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