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36막 태어나 시뻘건 놈을 모자 씌워 놓고 폴라로이드 찍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백일이란다. 시간도 참 빨리 간다.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갔다. 이녀석이 웬간해선 웃어 주질 않는다. 딸랑이를 흔들고 혓바닥으로 또르르~ 소릴 내고 별 재롱을 다 떨어도 아이는 엎드려서 고개를 쳐든 채 심드렁한 표정이다. 커피를 젓는 스트로같이 생긴 플라스틱막대가 있길래 그걸 입에 물고 애 볼에 바람을 불었다. 입가가 간지러운지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아, 뭐해? 빨리 찍어!" 아이 입장에서야 분명히 웃는 건 아니겠지만 사진엔 틀림 없이 웃는 얼굴로 나올 것 같다. "하여간 유진이 너 장난치는 거 하난 알아줘야 해..." 사진을 찍던 친구녀석이 웃는다. "앞으로 우리 스튜디오에 딸랑이 대신 빨대를 갖다 놔야겠다." 조만간 우리집 벽에는 나, 와이프, 기홍이 셋이 찍은 사진 옆에 한 식구가 더 늘어난 네 식구의 사진이 걸릴 것이다. 난 저금통에 동전을 모은다. 거스름돈을 받거나 우수리 동전이 생기면 어김 없이 집어 넣는다. 그렇게 일 년을 모으면 약 200여불 가까이 모인다. 16"X20" 액자사진 하나는 찍고도 남을 만한 돈이 되는 것이다. 그 돈으로 매년 정초에 가족사진을 찍는다. 결혼 8년째... 그렇게 찍은 사진이 벌써 액자로 다섯 개가 되었다. 우리 집 거실 벽으로 그 액자들을 연도 순으로 주욱 걸고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나이 먹어가는 모습,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작은 역사처럼 담고 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장성한 후, 20~30개의 액자들을 차례로 보면서 느끼게 될 자신들의 존재가치,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을 가족의 소중함. 나 또한 틈틈이 그 사진들을 보면서 깨닫게 될 주어진 삶에 대한 애착, 감사, 그리고 사랑. 그것이 내가 가족사진에 남다른 공을 들이는 이유다. ------ 낮에 사진을 찍느라 아이가 피곤했는지 잠 투정이 심했다. 뜬금 없이 예전에 애 엄마 임신 5, 6개월 때 초음파 검사하면서 들었던 소리가 생각났다. 쿠둥, 쿠둥 하는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들리던 그 소리... 뭐 비슷한 소리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티비 볼륨을 크게 올리고 999번 채널을 눌렀다. 당연히 화면이 나올리가 없다. "치이이~"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온 방안을 울린다. "이게 뭐야, 빨리 꺼요!" "가만 있어 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한 1분 그러고 있으니까 놀랍게도 아이가 잠에 빠져든다. 티비에서 나오는 치이이이~ 하는 그 소리... 예전에 초음파 청진기를 통해 들었던 애 엄마의 자궁 속 소리와 어쩜 그렇게 비슷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