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7K 카피는 벌써 경력이 7년인데도 아직도 운전을 잘 못한다. 길눈이 어둡기가 심청이 아버지 울고갈 정도이다. 예를 들어 집들이에 초대를 하고 그를 기다리면 다 먹고 치우고, 과일 먹고 커피마시고 나서 하나, 둘씩 집에 간다고 일어서면 그제서야 잠들어 버린 꼬맹이 둘과 아사(餓死) 직전의 눈이 퀭~해진 와이프를 대동하고 들어서는 것이다. 물론 늦게 떠나기도 하지만 불과 30분 거리를 두시간에 걸쳐서 돌아오는 것쯤은 그에겐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런 그가 5번의 낙방 끝에 간신히 면허를 딴지 한달 쯤 되었을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오신단다. 내게 공항에 가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걱정마, 혼자 갈테니까 길이나 가르쳐 줘..." 비행기 시간은 2시 30분, K 카피는 불과 30분 거리의 공항을 가기 위해 오전 열한시에 회사를 나섰다. 그리고 약 12시간 후, 입을 굳게 다문 어머니와 함께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그는 열두시간동안 어딜 다녀온 것일까? 나는 한참을 지난 후에야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K카피에게 먼저 가르쳐 준 길은 프리웨이(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고속도로는 무섭다면서 샛길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 오피스를 나선지 30분 뒤, 그는 베벌리 힐스 주택가를 열심히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차에서 내려서 어떤 백인 할아버지에게 공항 가는 길을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어서 겨우 본궤도에 진입하는데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30분 후, 또 길을 잃고 잉글우드라는 흑인동네에서 겁먹은 눈으로 차창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우여곡절(어떤 우여곡절인지 아직도 함구하고 있다) 끝에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중간에 내려서 개스를 한 번 넣었다니까대충 짐작은 간다. 그동안 기다림에 지친 칠순이 넘으신 불쌍한 어머님은 공항 대기실? 출구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목이 빠지게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한다. 천신만고 끝에 공항에 도착한 K카피는 오른쪽 차창 너머로 목이 빠질대로 빠져버린 어머니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외쳤다. "어머니!"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만 차선을 변경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달랑 눈만 한 번 마주친 채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 반갑게 손을 흔들고 계신 어머니 앞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옆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차 때문에 차선을 변경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 계신 곳으로 돌아가려고 공항 순환도로를 탄다는 것이 또 차선변경에 실패하는 바람에 다른 차들에 휩쓸려서 엉겁결에 반대방향 고속도로를 집어타고 허둥지둥 가다가 내린다는 것이 Compton이라는 온통 흑인들만 사는 동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물어 물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 것은 오후 7시. 손만 딱 한번 흔들어 주고 휑하니 떠나버린 아들의 뒷모습에 너무나 기가 막혀버린 어머니는 그자리에 꼼짝 않고 망부석이 된채로 서 계셨다고 한다. 얼마나 우셨는지, 눈물에 콧물에 매연으로 범벅이 되어 얼굴이 온통 새카맣게 된 노인네를 싹싹 빌고? 빌어서 차에 태우고 또다시 밤길을 헤매며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열한시였다... K카피의 부인과, 연락을 받고 K카피의 집에 모인 몇몇 직원은 경찰서에 연락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에 대해 열심히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K카피...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한없이 사람 좋은 K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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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머님이 작년에 또 오셨었다. 이번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온 식구가 놀러갔다가 차를 어디다 주차했는지 잊어버려서 그 큰 주차장을 두시간 정도 헤매고 걸어다니다가 새벽 두시에 귀가, 찬바람 쐬신 불쌍한 우리의 어머님은 몸살이 걸려서 사흘을 앓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공항 가는 차 안에서,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운전을 하는 아들에게 어머님이 물으시더란다. "얘, 공항 가는 길 새루 깔았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