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9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 치고 영어 이름 한 번 안가져 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멀쩡한 내 이름 놔 두고 한국 사람들끼리 마이클, 스티브 하고 부르는 것도 웬지 어색했거니와 누가 영어로 내 이름을 부르면 꼭 제집 똥개 부르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라고 별 수 있는가. 아무리 Jin이라고 J. I. N.하고 불러 줘도 집으로 날아오는 각종 우편물들을 보면 어김 없이 Jim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한 일, 이년 버티다가, 결국은 나도 포기하고 영어 이름을 하나 갖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한 끝에 사람들이 내 이름을 JIM이라고 부르니까 아예 JIMMY가 괜찮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JIMMY로 이름을 정하고 한 2년간을 JIMMY KIM으로 살았다. 어느 날, 내 명함을 받아든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JIMMY KIM씨 거꾸로 읽으니까 "김지미"네요?"

아뿔싸... 그걸 몰랐네. 졸지에 한국의 리즈 테일러 김지미가 된 것이다. 그날로 나는 지미란 이름을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이름, JIN KIM을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몇 달을 고민한 끝에 Eugene(유진)이란 이름으로 정했다.

유진 킴, 김유진...

듣기도 좋고, 부르기도 좋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며 그 이름을 거의 10년 가까이 써 왔다.

다음 카페에 등록하고, 또 386 카페에 가입할 때 난 아무런 의심 없이 "유진"이란 아이디를 썼다. 10년 여를 써 온 내 이름을 놔두고 다른 아이디를 또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진"이란 아이디로 386 대화방에 들어가니까 몇몇 사람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ㅎㅎㅎ 유진님 안녕하세요?"
"ㅎㅎㅎ 유진... ㅋㅋㅋ"
"유진님, 저는 바다랍니다.."
"카카카.. 나는 "슈"..."

한참을 지난 뒤에야 SES라는 이쁜이 3총사 그룹중 한 멤버의 이름이 유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유진"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SES의 미소녀 유진 아니면 괴짜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라나...

지금은 여차 저차한 이유로 유진이라는 이름을 "궁즉통"으로 바꾸게 되었다. "궁즉통"은 지금 브라질에 가 있는 내 친구가 즐겨 쓰던 아이디다. 웬걸, "궁즉통"으로 처음 로그인하던 날...

"방가 통님..."
"어솨요, 통님... 올해 연세가?"
"... 그럼 아자씨네요..."
"아저씨? 통... 아저씨? 맞다 통아저씨..."
"캬캬캬 통아자씨..."
"하하하, 통아저씨!"
"통춤 잘춰요? 통아저씨?"

대체 뭔 소리인지...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나는 그 통아저씨가 나오는 비디오 테이프를 어렵게 구해다 봤고, 사람들이 왜 통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재미있어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 바꾸기에도 이젠 지쳤다. 그리고 통아저씨도 이젠 오래 함께 해온 내 이름인 양 정겹게 들리고... 통춤도 못추고 분위기도 잘 못맞추는 통아저씨는 오늘도 즐거운 만남을 기다리며 열심히 대화방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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